반도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소재·소모품 기업이 조용히 버는 이유
2026년 6월 10일
들어가며: 프린터 말고 잉크를 사라
반도체 투자라고 하면 대부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를 먼저 떠올립니다. 주가도 크고, 뉴스도 많고, 이름도 익숙합니다. 그런데 이 글은 그 기업들 이야기가 아닙니다.
반도체 공장이 가동되는 동안 매 분기 반복해서 소비되는 소재와 소모품,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기업들 이야기입니다.
비유로 시작하겠습니다. 프린터를 한 번 사면 몇 년은 씁니다. 하지만 잉크와 드럼은 쓸 때마다 계속 사야 합니다. 프린터(장비)는 한 번 팔리면 끝이지만, 잉크(소재)와 드럼(소모품)은 프린터가 켜져 있는 한 계속 팔립니다. 반도체 공장도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반도체 장비를 만드는 회사는 공장을 지을 때 큰 계약을 한 번 따냅니다. 반면 소재와 소모품을 납품하는 회사는 그 공장이 돌아가는 매 분기마다 꾸준히 매출이 발생합니다. 공장이 멈추지 않는 한 주문이 끊기지 않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반도체 공정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 정밀해집니다. 요리를 더 정교하게 할수록 도마가 더 빨리 닳고 칼을 더 자주 갈아야 하는 것처럼, 공정이 정밀해질수록 같은 공장에서 소재와 소모품이 더 많이, 더 자주 소비됩니다. 공장 수가 늘지 않아도 소모량이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이유입니다.
이 글은 그 구조를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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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장이 가동될수록 반복 매출이 발생하는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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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 고도화될수록 소모량이 늘어나는 구조를 가진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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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가가 적정 가격보다 싼 기업과, 이미 비싸진 기업
이 세 가지 기준으로 국내 기업 13곳을 정리했습니다. 반도체 뉴스에서 자주 들리지 않는 이름들이지만, 공장이 돌아가는 한 조용히 돈을 버는 기업들입니다.
P사이클과 Q사이클, 두 국면의 차이
반도체 투자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두 가지 국면이 있다. P사이클과 Q사이클이다. 이 둘을 구분하면, 왜 지금이 소재·소모품 기업에 주목해야 할 시점인지 보인다.
P사이클 , 같은 물건이 더 비싸게 팔리는 국면
P는 Price(가격)의 첫 글자다. 반도체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는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등한다. 공장 수나 생산량을 늘리지 않아도, 가격이 오르기만 해도 반도체 제조사의 이익이 크게 늘어나는 구간이다.
실제로 DRAM 가격은 2024년 1분기 대비 2분기에만 93~98% 상승했다. 이 가격 급등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약 7조 7,000억 원 적자에서 2025년 약 44조 7,000억 원 흑자로 전환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2023년 약 14조 9,000억 원 적자에서 2025년 약 57조 원 흑자로 돌아섰다.
이것이 P사이클이 만드는 이익의 변화 방식이다.
Q사이클 ,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돌아가는 국면
Q는 Quantity(수량)의 첫 글자다. P사이클이 진행되면 반도체 제조사들은 늘어난 이익을 공장 증설과 라인 확장에 투입한다. 이 투자가 실제 생산으로 연결되면서 물량이 늘어나는 구간이 Q사이클이다.
P사이클에서 가장 많이 버는 것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메모리 제조사다. 반면 Q사이클, 즉 공장이 더 많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 혜택이 소재·소모품·장비 기업으로 흘러간다.
커피 가격이 갑자기 2배가 됐다고 상상해보자. 처음에는 커피를 파는 카페가 가장 많이 번다. 이게 P사이클이다. 그러다 카페가 돈을 벌어 지점을 늘리기 시작하면? 커피 원두(소재), 컵(소모품), 에스프레소 머신(장비)을 납품하는 회사들이 바빠진다. 이게 Q사이클이다.
지금은 딱 그 전환점
2024년과 2025년은 DRAM 가격 급등이 만든 전형적인 P사이클이었다. 이 급증한 이익은 대규모 설비 투자(CAPEX, 공장·장비에 돈을 쓰는 것)로 이어지고 있다.
KB증권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합산 영업이익을 2025년 91조 원으로 제시했다.
보고서는 2026년 영업이익을 630조 원으로 전망했다.
2027년 전망치는 906조 원이다.
이 투자가 실제 가동으로 이어지면 소재와 소모품 수요가 늘어난다.
그로쓰리서치(2026년 6월 8일)는 지금을 "반도체 업황의 주도권이 칩메이커에서 소부장 기업으로 이동하는 전환점"이라고 진단했다. 가격 상승이 이익을 이끌던 국면에서, 물량 확대와 공정 고도화가 실적을 이끄는 국면으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아래 표는 두 국면의 차이를 한눈에 정리한 것이다.
| 구분 | P사이클 (가격 상승 국면) | Q사이클 (물량 확대 국면) |
|---|---|---|
| 언제? | 수요 > 공급일 때 가격이 오르는 시기 (2024년 하반기 ~ 2025년) | 공장·설비가 늘어나며 생산 물량이 커지는 시기 (2025년 하반기 ~ 2026년~) |
| 누가 가장 많이 버나? |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메모리 제조사 | 소재·소모품·장비 기업 |
| 이익이 생기는 원리 | 같은 물량을 팔아도 가격이 올라 이익 증가 | 가격이 같아도 물량이 늘면서 이익 증가 |
| 주가 수혜 대상 | 메모리 반도체 대기업 | 반도체 소재·소모품·장비 기업 |
수요를 만드는 두 개의 엔진
Q사이클이 본격화되면서 소재·소모품 수요를 끌어올리는 두 개의 엔진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첫 번째 엔진 , 공장이 더 많이 돌아간다
가장 먼저 숫자로 확인된다. SEMI(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전 세계 실리콘 웨이퍼 출하량은 32억 7,500만 제곱인치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3.1% 늘었다. 웨이퍼는 반도체 공장이 더 많이 돌아갈수록 더 많이 쓰인다. 이 숫자는 공장 가동량이 실제로 늘고 있다는 직접적인 신호다.
장비 투자는 그보다 더 크다. SEMI는 2026년 전 세계 300mm 반도체 공장 장비 투자가 전년 대비 18% 늘어난 1,330억 달러(약 18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의 흐름도 같은 방향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모두 다년간의 설비 투자 계획을 실행 중이며, 한국의 장비 투자는 전년 대비 27% 늘어난 296억 6,000만 달러(약 40조 원) 규모로 전망된다.
장비를 사는 것 자체가 소재·소모품 수요를 만드는 건 아니다. 그 장비가 실제로 돌아가기 시작할 때, 소재와 소모품이 소비된다. 공장이 더 많이, 더 오래 돌아갈수록 소재·소모품 기업에 흘러내려오는 물량은 그만큼 늘어난다.
두 번째 엔진 , 공정이 고도화될수록 더 많이 소모된다
이 엔진이 더 중요하다. 공장 수가 늘지 않아도 소재·소모품이 더 많이 팔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정 고도화가 같은 설비 내에서 소비를 늘리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정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 정밀해진다. 낸드 리소그래피 공정의 반복 횟수는 9세대(V9)에서 10번이었다. 작업 반복이 늘면 재료와 부품이 더 많이 소모된다.
10세대(V10)에서는 리소그래피 반복 횟수가 14번으로 늘어난다. 막을 원자 단위로 쌓는 ALD 공정도 DRAM이 한 세대 올라갈 때마다 스텝 수가 크게 증가한다. 작업이 반복될 때마다 재료가 소모되고 부품이 닳는다.
HBM4(최신 고성능 메모리)는 이전 버전(HBM3E)보다 웨이퍼를 33% 더 쓴다. 낸드는 층수가 높아질수록 공정 챔버 안에서 부품이 더 빨리 마모된다. 이 관계는 공정 미세화가 멈추지 않는 한 구조적으로 계속 유효하다.
💡 요리를 더 정교하게 할수록 도마도 더 빨리 닳고 칼도 더 자주 갈아야 한다. 반도체 공정이 정밀해지는 것도 같은 원리다. 같은 공장에서 더 좋은 반도체를 만들수록 소재와 소모품이 더 많이 소비된다.
두 엔진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
중요한 점은 이 두 엔진이 따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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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엔진: 새 공장이 생기고 기존 공장이 더 많이 돌아가면서 소재·소모품의 절대 소비량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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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엔진: 공정이 고도화되면서 같은 공장에서도 소재·소모품을 더 많이, 더 자주 소비하는 구조로 바뀐다.
공장이 많아지는 동시에 공정도 정밀해지고 있다. AI 학습과 추론 수요 증가가 HBM 수요를 끌어올리고, 데이터센터용 낸드 수요도 함께 늘면서 이 두 엔진에 동시에 연료가 공급되는 상황이다.
소재·소모품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히 공장이 늘어나는 것보다 훨씬 유리한 구조다. 공장 수가 늘지 않아도 공정이 고도화되기만 해도 매출이 증가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공정별 수혜 기업 지도 , 웨이퍼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돈을 버는 기업들
반도체 공장 안에서 웨이퍼는 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회로를 그리고, 막을 쌓고,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고, 표면을 평평하게 다듬고, 마지막으로 불량이 없는지 확인합니다. 이 흐름의 각 길목마다 소재와 소모품이 소비됩니다. 국내 기업들은 이 길목 곳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① 리소그래피 , 빛으로 회로를 새기는 단계
웨이퍼 위에 감광액(포토레지스트)을 바르고 빛을 쏘아 회로 패턴을 새기는 작업입니다. 핵심은 반복 횟수입니다. 낸드 메모리의 층수가 올라갈수록 이 작업을 되풀이하는 횟수가 늘어납니다. 9세대(V9)에서 10번이던 것이 10세대(V10)에서는 14번으로 늘어납니다. 같은 공장에서 층수만 올려도 감광액 소비량이 40% 가까이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동진쎄미켐이 수혜를 받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감광액 시장의 90% 이상을 일본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지만, 삼성전자 3D 낸드에 쓰이는 KrF(크립톤 불화물) 두꺼운 감광액만큼은 동진쎄미켐이 사실상 독점 공급합니다. 낸드 층수가 올라가는 한, 이 수요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② ALD 증착 , 원자 두께로 막을 쌓는 단계
ALD(원자층 증착)는 원자 한 층씩 막을 쌓는 공정입니다. 쉽게 말하면 웨이퍼 위에 눈에 보이지도 않을 얇은 필름을 층층이 덮는 작업입니다. DRAM 공정이 한 세대 올라갈 때마다 이 막을 쌓는 횟수가 크게 늘어납니다. 이전 세대에는 2~3번이던 것이 최신 세대에서는 10번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막을 쌓을 때마다 전구체(막의 재료가 되는 화학물질)가 소모됩니다.
한솔케미칼과 덕산테코피아가 이 전구체를 공급합니다. 새 공정 라인이 안정 가동에 들어가는 2026년 하반기부터 이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어납니다.
③ 식각·세정 , 깎아내고 씻어내는 단계
막을 쌓은 다음에는 불필요한 부분을 화학약품으로 깎아내고(식각), 남은 불순물을 씻어냅니다(세정). 이 두 단계에서 소비되는 화학 재료는 신규 공장 라인이 가동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바로 소모됩니다. 설비 투자가 실제 생산으로 연결되는 시점에 가장 빠르게 매출이 잡히는 구조입니다.
솔브레인은 이 식각·세정 소재 분야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양사를 모두 고객으로 두고 있습니다. 신규 라인 가동이 곧 솔브레인의 분기 실적으로 직결되는 이유입니다.
④ 식각 소모품과 챔버 소모품 , 공정 안에서 닳는 부품들
식각 공정에서는 화학약품 외에 챔버(반응 용기) 안에서 같이 닳는 부품들이 있습니다. 플라즈마(고에너지 가스)로 막을 깎을 때 챔버 내부 부품도 함께 소모됩니다. 낸드 층수가 높아질수록 플라즈마 에너지를 더 세게 써야 하기 때문에 부품이 더 빨리 닳습니다.
티씨케이와 하나머티리얼즈는 이 식각 소모품을 공급합니다. HBM4(최신 고성능 메모리)부터는 새로운 소재의 부품이 추가로 채택되어 이 두 기업의 공급 범위가 넓어집니다.
챔버를 감싸는 석영(쿼츠) 부품은 별도입니다. 선단 공정일수록 오염 속도가 빨라져 교체 주기가 짧아집니다. 원익QnC, 월덱스, 비씨엔씨 세 기업이 이 석영 부품 시장을 나눠 공급하고 있습니다. 미국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이미 이 부품의 재고를 두 배 이상 확보해달라고 선제적으로 요청한 상태입니다.
⑤ 어닐링·CMP , 치유하고 다듬는 단계
공정 중간중간에는 미세한 결함을 고치고 표면을 고르게 만드는 단계가 들어갑니다.
어닐링(열처리)은 고온·고압의 수소 가스로 공정 중 생긴 미세 결함을 치유하는 작업입니다. 최신 DRAM 공정에서 새로운 절연막 구조가 채택되면서 이 열처리 공정이 필수가 됐습니다. HPSP는 이 고압 수소 어닐링 장비 시장에서 점유율 95%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CMP(화학적 기계 연마)는 층을 쌓은 뒤 표면을 연마재로 갈아 평평하게 만드는 공정입니다. HBM처럼 메모리를 수직으로 쌓는 구조에서는 층을 쌓을 때마다 이 연마 과정이 필요합니다. 층수가 늘어날수록 연마 횟수와 소모량도 비례해서 증가합니다. 케이씨텍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CMP 장비를 만드는 기업입니다.
⑥ 세정·재생과 계측·검사 , 장비를 관리하고 불량을 잡는 단계
공정이 끝난 부품과 장비는 정기적으로 세정하고 코팅을 다시 입혀야 합니다. 공장 가동률이 높아질수록 부품이 더 빨리 오염되어 청소 주기가 짧아집니다. 코미코와 한솔아이원스는 이 세정·재코팅 서비스를 제공하며, 삼성전자·TSMC(대만의 파운드리 세계 1위 기업) 공장 인근에 현지 거점을 미리 만들어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불량 여부를 확인하는 계측·검사 단계가 있습니다. 공정이 정밀해질수록 원자 단위의 결함도 잡아야 하기 때문에 검사 장비의 중요성이 커집니다. 파크시스템스는 원자간력현미경(AFM) 분야에서 세계 선두입니다. 반도체 업황이 좋든 나쁘든 공정 미세화 흐름이 이어지는 한 이 수요는 구조적으로 유지됩니다.
아래 표는 이 흐름을 한눈에 정리한 것입니다.
| 공정 | 쉬운 설명 | 국내 수혜 기업 |
|---|---|---|
| 리소그래피 | 빛으로 회로를 새기는 작업. 낸드 층수가 올라갈수록 반복 횟수 증가 | 동진쎄미켐 |
| ALD 증착 | 원자 두께로 막을 쌓는 작업. 공정 세대마다 횟수 급증 | 한솔케미칼, 덕산테코피아 |
| 식각·세정 | 막을 깎고 씻어내는 화학 재료. 신규 라인 가동 즉시 소모 | 솔브레인 |
| 식각 소모품 | 챔버 안에서 닳는 부품. 낸드 층수·HBM4 채택으로 소모 가속 | 티씨케이, 하나머티리얼즈 |
| 챔버 석영 부품 | 챔버를 감싸는 소모성 부품. 교체 주기 단축 | 원익QnC, 월덱스, 비씨엔씨 |
| 어닐링 | 결함을 수소 열처리로 치유. 최신 DRAM 공정에서 필수화 | HPSP |
| CMP | 표면 연마. HBM 층수 증가로 소모량 비례 증가 | 케이씨텍 |
| 세정·재생 | 오염 부품 세정·재코팅. 가동률 상승으로 주기 단축 | 코미코, 한솔아이원스 |
| 계측·검사 | 원자 단위 불량 검사. 공정 미세화로 구조적 수요 증가 | 파크시스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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